현대의 예술철학자들에 따르면 예술은 불과 2세기 전부터 존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학계, 박물관, 화랑, 거래상, 비평가, 저널, 학자들로 구성된 에술계가 출현하여

소유와 전시라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제작된 인공물을 다루기 시작한 18세기 말,

계몽주의 시대의 영국과 독일에서 예술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출현하였다는 것이다.

원래 예술(ART)이라는 개념은 '기술' 또는 '기예'를 뜻하는 그리스어 '테크네'(TECHNE)와

라틴어 아르스(ARS)를 어원으로 하는데 순수한 미적 목적을 위한 경우는 드물었고

실용적인 목적과 결부되어 있었던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계몽주의 시대이후 천재, 창조적 상상,

자기표현, 독창성, 소통, 감정 등의 개념들이 근본적으로 또는 배타적으로 관련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엘렌 디사나야케, <미학적 인간, 호모 에스테티쿠스>, 96-97쪽).

포스트 모더니즘의 비관주의에 반대하며 다윈주의 미학을 주창하는 디사나야케는 특별화하기 위한 욕망과 결부된

예술이 삶을 위한 것이고, 인간의 다양한 욕구 충족을 위한 것이며, 인간의 생존을 위한 것이어서,

인간이 획득한 진화적 적응의 중심이었다는 주장을 펴면서 "춤추고 노래하고 일하는

당신이 바로 호모 에스테티쿠스(Homo Aestheticus)이다"라고 선언한다.

1,000년의 전통을 지키며, 소의 오줌과 비둘기 똥, 그리고 생선기름으로 가죽 염색과 가공을 하는 모로코 페스의 장인들...
그러나 그들에게서 실용적 목적을 위해 노동하며 삶을 이어가는 미학적 인간을 연상하기는 사실상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외지의 여행객들이 민트차를 마신 후 차잎을 코 밑에 붙이고서야 가까스로 바라볼 수 있는 이곳에서

민트차도 마시지 않고 그들이 감내하고 있는 지독한 냄새를 같이 호흡하며 사진을 담는 동안,

페스 가죽공장의 노동자들에게서 얻은 인상은 미학적 인간이라기 보다는 생존을 위해 시지프스처럼 제 짐을 짊어지고

자기 인생의 언덕을 수없이 되풀이해서 올라가는 노동하는 인간에 대한 연민 뿐이었다.

에술품 감상이나 예술적 경험에서 느끼는 감정에 대해 애기하는 것조차 이상하게 되어버렸다고 현대의 예술철학에 대해 비판하며

"과거에는 신비와 신성과 금기가 감정의 힘을 인정하지 못하도록 억누름으로써 종교와 성의 세속화를 막았지만,

먼저 종교가 그 다음엔 성이 그런 후광을 잃어버린 지금 예술은 침묵의 마지막 보루로 남아있다"라는
디사나야케의 논리를 사진을 만지면서 헤야려 보았지만 지금은 내 스스로 그의 비판의 대상이라도 되어야 할 듯했다.

이 더럽고 냄새나는 페스 한 모퉁이의 가죽 공장에서 나는 고양의 감정을 결코 얻지 못했던 것이다.

예술은 아름다움의 표현이어야만 한다라는 편협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어서 일까? (후략)

                                                                               @ Morocco, 페스의 가죽공장(태너리, Tanne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