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프리카 모로코의  페스(Fes)는 고대의 역사와 무슬림의 가장 오래된 역사가 함께 융합되어 있는 도시이다.

그러한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 도시의 공간구성과 건축양식이다. 일반적으로 건축양식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는 것이 '지주'와 '들보'이다. 그리스의 '이오니아', '도리아', ' 코린트' 양식도 지주와

지붕을 연결해주는 부분인 엔타블레이쳐entablature)와 처마의 장식인 코니스(Cornice)의 장식 형태에 따라

구분하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바로크  건축양식을 의미하는 츄리게라(Churrigueresque) 양식도 마찬가지이다.

동아시아 목조건축기법의  전형으로 평가받는 것이 송대(宋代)인 1100년 경에 발간된 『영조법식』(營造法式)이다.  

일반적으로 중요한 인물을 '동량'(棟梁)이라고 부르는데, 들보를 의미하는 '량'(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명문으로 꼽히는 최순우 선생의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에서 배흘림 양식은 같은 두께의 기둥을

올리면 중간 부분이 가늘게 보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시각적 문제를 고려하여 지주의 가운데를 살작 두껍게 변형을 준 것이고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도 배흘림 양식을 적용히고 있으니 건물을 지탱하는 기능적 측면 못지 않게 미학적 고려가 들어간

것이어서 지주와 들보의 엇물림은 건축양식의 중핵이 확실하다. 물론 나도 목조건축물을 볼 때는 지주와 들보의 연결 방식인

'천두식'(穿斗式), '대량식'(擡梁式), '정간식'(井干式) 등을 살펴보고 지붕과 처마를 지탱해주기 위한 이음새, 곧 목조들을

두툼히게 끼워맞춘 '공포'(栱包)를 살펴보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건축의 완성이 아니라 역사의 흔적을 담은 '벽'(壁)에 더 애착을 갖는다. 건물의 얼굴이기도 하거니와

사람의얼굴표정을 읽는 듯하기 때문이다. 인간애(人間愛)가 내 삶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터이라 건물을

볼 때도 벽을 보면 사람을 대하듯, 반가운 마음이 든다.

8-9세기에 지금의 공간으로  조성된 모로코 제2의 도시 페스(Fes).

튀니스 출신인 이슬람 최고의 사상가 이븐 할둔(Ibn Khaldun)이 스페인의 세비아(sevilla)에서

14세기에 튀니스로 망명해왔지만 그의 흔적을 모로코의 페스에서 찾고는 이리저리 골목을 뒤지다가 이 벽에 눈이 머물렀다.

진흙과 회벽을 고쳐바르며 세월을 버텨온 역사의 생생한 얼굴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쳐다

보다가 벽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모로코의 역사를 가슴에 새겼다.

그러나 역사를 모르는 저 무심한 비들기는 나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었다...

                                                                                                                   Fes @  Morocco, North Africa.

이븐 할둔은 『 역사서설』에서 베두인족(Bedouins)의 역사를 생명체의 생명주기처럼 파악하고 '유목형'(Nomadic)과

'정주형'(Sedentary) 사회가 교차적으로 순환한다고 보았다. 그의 '유목형 사회'에서 이름을 따와 프랑스의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는 공간적 이동이 자유로워진 현대의 정보사회를 '새로운 유목사회'(Neo-Nomadic Society)로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