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늘 쓰는 '현재'(現在)라는 용어...

그러나 '현재'의  시간적 길이를 규정해주는 절대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어로 'Modern'은 근대를 의미하므로 대체로 르네상스 이후 두 개의 혁명,

곧 시민혁명과 산업혁명까지의 기간을 지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대'를 영어로 쓸 때 'Present Time, Now, Contemporary' 등의 용어를 사용하지만

'Present Time'이나 'Now'라는 말은 사실 덧없는 말일 뿐이다. 

말하는 순간 바로 지나간 과거가 되기 때문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Here & Now'라고

'이곳'이라는 장소성을 보태어 현재의 덧없음을 보완하려 애쓰지만

그 역시 소멸되는 시간적 길이를 채워주는 것은 아니다. 당장 어떤 말을 해도

그 말의 시공적 한계 때문에 그 의미는 바로 이 순간의 내 생각이 아니라 바로 지나간 과거의

내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자끄 데리다(Jacques Derrida)가 우리가 쓰는 언어적 의미구조의

불완전성을 고려하여 '디페랑'(différend, 差延)이라는 말을 생각해낸 것도 그런 우리들의

존재론적 한계를 고려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와 바로 직전의 '나'는

다른 의미세계 속을 살아가는 것이므로 동일한 존재가 아닌 셈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해체주의'에 빠진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현재의 덧없음을 해소하기 위하여 컬럼비아 대학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은 시인 심보선은

'슬픔이 없는 십오초'라는 시집을 통해 과거와 미래 사이의 15초를 설정하고 그 진공의 시간을

느리게 펼쳐보이는 시도를 보인다. 그렇다고 그가 '현재'라는 '시간적 덧없음'의 문제를

해결한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런데 저 여성이 내게 건네준 '선한 미소'가 흐린 내 눈동자에 번개 내려치듯 꽂히며

'슬픔이 없는 15초', 아니 '행복한 15초'를 느끼게 해주었다. 아니, 더 정확히 그 순간을 말하자면

찰나(刹那)의 느낌이었다. 산스크리트어로 찰나(刹那)를 '크사나'(ksana)라고 한다. 120찰나(刹那)가

1달찰나(怛刹那, tat-ksana, 순간, 약 1.6초)이니 1찰나(刹那)는 75분의 1초(약 0.013초)에 해당한다.

그것이 우리가 매번 과거로 보내버리는 '현재'인 셈이다.

​

물론 그것이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 그리고 당연히 현재의 시간적 한계를 내가 극복한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그런들 어떠랴? 그 번개 내려치듯 내 눈동자를 찌른 찰나(刹那)의 기쁨을 나는 철저하게 감지하고

느꼈지 않은가? 사진을 하는 나는 찰나(刹那)의 감각을 헤아리며 그나마 충실한 세상 헤아리기를 하는 것 아닌가?

'슬픔이 없는 15초'가 아니라 그 번개 때리듯 내려치는 찰나(刹那)의 순간에 내가 가졌던 느낌만으로

나는 충만(充滿)하다. 게다가 저 비둘기가 찰나(刹那)의 기쁨을 평화로 장식해주고 있지 않은가?

                                                                                   Fes @ Morocco, North Af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