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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희망은 빛의 언어로 얘기한다
기기제조원
Canon
카메라모델
Canon EOS 5D
플래시
Flash did not fire, Auto
초점거리
70.0 mm
조리개변경
5/1
노출방식
Aperture priority
노출모드
Auto exposure
노출시간
1/800 sec
노출보정
1/-3
W/B
Auto white balance
ISO
100
촬영일자
2008:01:21 20:38:26

최근 사회과학의 화두는 역사학이나 철학의 영역과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생활세계에 대한 이해이다.  
신문화사(新文化史)나 일상생활의 사회학 또는 민속방법론(ethnomethodology) 등 일상생활에 대한 분석적 재구성을 통해
삶을 이해하려는 시도들이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와 정치구조, 그리고 계급구성 등의 거시적인 영역보다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미시적인 일상의 생활영역에 눈이 미치고 있고, 거시적인 사회구조가 그 영향력을 더해가고는 있지만
그러한 거시적인 사회구조도 사실은 미시적인 기반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까닭이다.

일상생활에 대한 그러한 사회학적 관심은 추체험(nacherleben)과 감정이입 등 해석학적 이해에 관심을 기울여온
독일 신칸트학파의 주관적 이해(verstehen) 방법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사실 우리의 일상생활은 의미세계를 공유하며
의미지평의 혼융을 통해 삶의 경험을 함께 나누고 있는 우리 주변사람들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사전적으로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한다"라는 의미의 '이해'(理解)라는 용어는 대단히 다의적(多意的)이지만,
일상생활의 대인관계에서 '이해'는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린다"는 의미가 근본적인 바탕을 이룬다.
동아시아의 전통에서 대인관계에서의 '이해'의 방법은 맹자가 제시했던 충서(忠恕)가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무제 당시의 똥중쉬(董仲舒)에 의해 '충'(忠)이라는 용어는 군주에 대한 '충성'(忠誠)이라는 의미로 변질되지만,
원래 그 어원은 "마음 한 가운데로 들어가는 일"(中 + 心)과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서'(恕)라는 용어는 "마음을 같이 하는 일"
(如 + 心)의 의미를 담고 있다. 곧, '내 마음 한 가운데로 들어가서 남의 마음과 내 마음을 같이 여기는 일'이 '忠恕' 사상의
본질이며, 이것은 <大學> 10장에 나오는 '혈구지도'(絜矩之道)와도 상통된다. "곱자로 재듯이" "나의 처지로 미루어
남의 처지를 살피는 일"이 '충서'(忠恕)이자, 사회생활에서의 기본적인 대인윤리(對人倫理)이며 '이해'(理解)의 바탕이 되는 셈이다.

결론적으로 대인관계에서의 우리의 '이해'는 영어의 'grasp'나 'make sense of'라기 보다는 'appreciation'이나
'밑에 서다'(under + stand)라는 겸양의 의미를 어원으로 담고 있는 'understand'와도 어울리는 셈이며, 바로 그러한 점에서
동아시아적인 '이해의 방법은 '완벽한 소통행위'이자, 해석학에서 말하는 '의미지평의 혼융'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똘레랑스>를 쓴 홍세화 선생이 첫째, '나와 타인의 차이를 인정할 것' 그리고 둘째, '나의 입장에서 타인의 입장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것,'
그렇지만  셋째, '타인이 끝까지 자신의 입장을 견지하도록 지원할 것'을 프랑스적인 '똘레랑스'의 의미라고 지적하면서
마지막 세 번째가 가장 핵심적이며 그것은 영어의 '관용'(tolerance)이라는 용어에서는 찾을 수 없는 프랑스적인 전통이라고
지적한 바 았다. 그러나 사실 이 전통은 프랑스의 계몽주의자 볼테르(Voltaire)의 <관용론>을 통해 메아리처럼 퍼진 것이며,
<중국의 고아>를 통해 유교의 정신을 프랑스에 수입해서 자기의 사상으로 흡수한 사람이 바로 그 볼테르였으니
일상적인 생활세계의 대인윤리에서 우리의 전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금 되새겨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홍세화 선생의 <똘레랑스>는 실종되고 있는 우리의 '이해'에 대한 재발견 정도로 생각해도 무방할 것 같다.  

최근 사진의 영역에서도 일상과 삶을 그리는 일이 대단히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남을 이해하고 그로부터 되돌이켜 자신을 살펴보는 성찰적 이해가 사진의 본령으로서 의미를 더해가고 있는 것이다.
밑에서 서서 남을 바라보는 겸양의 원리와 관용의 미덕, 그리고 소통과 의미지평의 혼융, 그 이해의 방법이
사진의 영역에서 서서히 중심과제로 재인식되고 있는 셈이다. 찰라의 예술에 더해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소통의 예술,
그것이 사진이 갖는 또다른 속성이자 어쩌면 가장 근원적인 중핵 원리는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 그것도 빛을 받아 무언가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한 일상의 사람들이 최근에
사진의 중심으로 부각되는 일을 의미있게 지켜보고 있다. 그렇다! 빛은 희망의 언어로 이야기 한다...

                                            

청소부로서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한 여인에게 드리워진 빛, 그 희망의 갈래를 가다듬으며
                                                                                 인도 남부지역 빤짐 一隅에서  

사진가
박희(朴希)
제목
희망은 빛의 언어로 얘기한다
조회
610
추천
0
날짜
2012.06.09 10: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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