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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사람과 삶)

깨달음(覺)을 위하여
기기제조원
NIKON CORPORATION
카메라모델
NIKON D3
플래시
Flash did not fire
초점거리
60.0 mm
조리개변경
28/10
노출방식
Aperture priority
노출모드
Auto exposure
노출시간
1/250 sec
노출보정
0
W/B
Auto white balance
ISO
400
촬영일자
2010:04:23 14:57:38


부처님 열반 이후 불교는 여러 부파가 갈라지다가 남방은 상좌부(上座部) 불교, 북방은 대승(大乘)불교로 갈라졌다.

물론 동북아시아에서는 용수(龍樹 Nāgārjuna)의 공(空)개념과 중관사상(中觀思想), 그리고 무착(無着, Asanga)·

세친(世親, Vasubandhu) 형제의 유식론(唯識論)을 거치면서 대승불교의 부파가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남방불교는 개인의 해탈과 깨달음에 더 치중한다는 이유로  6파라밀(六度)의 수행을 강조하는 북방으로부터 

소승(小乘)불교라고 멸시받아온 그 상좌부 불교에 나는 더 매력을 느낀다.

어찌보면 타자 지향적인 사랑을 강조하는 가톨릭 신앙을 가진 나는 사실은 대승불교와 친화력이 더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더구나 사회과학과 철학적 사고에 익숙한지라 나는 용수(龍樹)의  '중관사상'이나 '공개념' 보다 '실재'가 

우리의 인식작용을 통해 현재화하는 것으로 보는 무착의 '유식론'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실제로는 상좌부 불교에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불전사물(佛前四物) 가운데 중생의 고통을 덜기 위해

지옥으로 울려퍼지도록 고안된 범종(梵鐘)이나 중생교화의 의미를 지니는 목어(木魚)와 운판(雲版)보다 지상의

생명체에게 진여(眞如, 절대 진리)의 법(法)을 일깨워주는 법고(法鼓)에 길이 더 ​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세속으로부터의 분리를 이름으로 하는 속리산(俗離山) 법주사(法住寺)에서 보았던 저 스님의 법고(法鼓)를

두드리는 모습에서 깨달음(覺)을 위한  진한 인간적 고뇌(苦惱)와  그의 인간으로서의 실존적 외로움이 마치 나의

아픔인 양 느껴졌던 하루...

                                                                                            俗離山 法住寺 @ 報恩, 忠北

사진가
박희(朴希)
제목
깨달음(覺)을 위하여
조회
37
추천
0
날짜
2020.06.02 20: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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